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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바스티안에서 매일 석양을 본 이야기 (4)

스페인을 9일간 혼자 여행한 이야기 4편 4화

서론, 1편 링크:
https://eidawrites.postype.com/post/2130562
https://eidawrites.postype.com/post/2150472


6월 23일 오후 7시, 산세바스티안 시 그로스의 펜시온 온다라 103호실. TV를 켜 놓은 채로 까무룩 잠들었던 내가 잠이 덜 깬 눈으로 스마트폰을 집어든다. 7시 반에 생명의 나무 행사가 있댔는데, 장소가 어디였지. 어찌어찌 찾아낸 스페인어 기사를 보니 콘스티투시온 광장이라는 곳이다. 구시가지니까 15~20분이면 갈 수 있겠다. 그리고 시작 시간은... 7시?

나는 화들짝 일어나 가방을 쌌다. 구시가는 도로가 좁아 버스가 들어가지 못해, 대중교통을 타도 걷는 것만큼 시간이 걸린다. 즉, 지금 당장 나가야 한다. 나는 도난방지장치가 달린 여행용 숄더백이 아니라, 어제 해변에 갈 때 썼던 Warriors love coffee 에코백에 몇 가지 물건을 던져넣은 후 곧장 숙소를 나섰다.

행사 앞부분을 놓치겠다는 생각에 몸은 바삐 움직였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산타 카탈리나 다리 위에서 보이는 우루메아 강과 산세바스티안 시내의 모습은 상쾌하고 깨끗했다. 몸 상태가 나아졌다는 데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만성 저체력인 탓에 콘스티투시온 광장까지 뛸 정도는 아니었지만.


상쾌하고 깨끗한 초저녁

도착해 보니 7시 20분이었다. 광장에는 이미 주변 건물보다 훨씬 키가 큰 나무 한 그루가 세워져 있었고, 흥겨운 아코디언 곡이 한참 울려퍼지는 중이었다. 안전펜스 너머에 몇 겹으로 늘어선 구경꾼들 사이에서 겨우겨우 까치발로 살펴보니 나무 주변에는 불이 피워져 있었고, 흰색 상의와 검은색 하의를 입은 남녀 무용수들이 주변을 돌며 춤을 추는 중이었다. 멀리 군인 복장의 남자들도 있었는데, 내 위치에서는 이들이 뭘 하는 사람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는 자리를 찾으려고 용을 쓰기 시작한 지 5분쯤 지났을까, 노래가 마무리에 들어가며 무용수의 퇴장이 시작됐다. 아무래도 춤은 거의 다 놓친 모양이다. 이걸로 끝은 아니어야 할 텐데. '이것으로 오늘의 행사를 마치겠습니다' 정도로 추정되는 안내 방송이 나왔지만, 주변의 관객들은 아무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당연히 나도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파란 티셔츠를 입은 두 중년 남성이 나무로 달려오더니 나무 주변의 불을 껐다. 이들은 어디선가 긴 사다리를 하나씩 들고 오더니 나무 옆에 세웠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두 남자는 갖고 있던 큰 칼로 나무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 순간, 구경꾼 한 사람이 펜스를 지나 생명의 나무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는 듯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목표는 두 남자가 칼로 잘라서 밑으로 던지는 생명의 나무 껍질이었다.생명의 나무 주변은 껍질을 달라고 소리지르는 사람, 굳이 기다리지 않고 직접 손으로 밑둥에서 껍질을 떼내려는 사람들이 한데 엉키며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이 껍질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대세를 안 따를 순 없지. 나도 하나 가져야겠다...!


생명의 나무 껍질을 향해 달려드는 산세바스티안 시민들

분위기를 타긴 했는데, 나는 생명의 나무 쟁탈전의 최약체였다. 더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한 몸싸움 능력, 사다리 위 아저씨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큰 성량, 위에서 떨어지는 껍질을 잡아내는 민첩성, 이도저도 안 되면 생나무에서 껍질을 뜯어내는 악력 중 무엇 하나 갖춘 게 없었다. 좀비 아포칼립스가 온다면 가장 먼저 좀비에게 물려 감염됐는데 인간을 물 기력이 없어서 굶어 죽는 좀비가 될 부류랄까.


대체 이 껍질이 뭐라고...?

다행히, 껍질을 차지한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면서 나도 서서히 나무에 가까워졌다. 이 연약한 성대와 소심한 몸짓으로 아저씨들의 관심을 끌긴 그른 것 같아, 나는 다른 사람들이 뜯어가고 남은 껍질 가장자리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생나무 껍질을 맨손으로 뜯는 것이라고 쉬울 린 없다. 나름 들꽃 하나 함부로 안 꺾으며 환경을 늘 존중했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포기할 순 없다. 나는 남들이 반쯤 뜯어내 너덜너덜해진 부분을 마침내 발견했고, 집요한 공략 끝에 엄지손가락 하나 반 정도 길이의 껍질을 획득했다. 


아직도 책상 서랍 속에 있는 문제의 껍질

도대체 이걸 어디에 쓰는 걸까라는 근본적인 의문과, 어쨌든 퀘스트를 완료했다는 뿌듯함이 섞인 채로 광장을 빠져나온다. 수리올라 해변에서 열리는 다음 행사까지는 꽤 시간이 남았으니, 이젠 주변을 여유롭게 돌아봐야겠다. 나는 아까 생명의 나무로 달려갈 때 가방에 넣었던 핸드폰을 꺼내려 에코백을 뒤적거렸다. 핸드폰은 금방 나왔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여권 케이스 겸 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늘 들고 다녔는데...?

아까 워낙 마음이 급했으니, 가방을 바꾸는 과정에서 여권을 두고 나왔을 수도 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만약에, 혹시나, 나무껍질 쟁탈전 중 가방이 열렸었다면? 혼란을 틈타 누군가가 내 에코백에 손을 집어넣어 지갑을 가져갔다면...? 나름 그 상황에서도 가방을 신경썼다고 생각했지만, 확신이 없었다.

평소 쓰던 여행용 숄더백이라면 잠금장치가 튼튼해 걱정이 덜했을 텐데, 하필 사람 많은 행사에 에코백을 들고 나왔다는 게 엄청나게 후회됐다. 숙소까지 서둘러 돌아가는 15분 내내 머리는 숨가쁘게 돌아갔다. 만약 여권이 없어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산세바스티안은 스페인 북동쪽 끝자락이라, 한국 공관이 위치한(그리고 귀국편 출발지인) 남동쪽의 바르셀로나와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여권이 없으니 이제 비행기는 불가능하겠고, 장거리 버스나 기차를 탄다면 남은 숙박 예약과 일정이 모두 어그러진다. '며칠 지났다고 방심하니까 바로 이런 일이 터지네. 외국 나와서 여권 안 챙기는 사람이 어딨어. 산세바도 결국 외국일 뿐인데, 혼자 풀어져서는...' 불안한 상황이 발생하면 심하게 긴장하는 기질이 온 정신을 흔들었다. 길가에 세워진 자동차 유리에 언뜻 비친 내 모습이 유달리 못생기고 초라해 보였다.

다행히, 호텔방에 다시 들어선 순간 침대 위에 놓인 여권케이스가 보였다. 나는 아까 나무껍질 쟁탈전에서보다 훨씬 큰 목소리로 안도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산세바스티안 시의 치안 상태에 대한 믿음도 원상 복귀됐다. 그래도 괜한 불안 요인을 만들 필요는 없겠지. 이 여행이 끝날 때까지 다시는 사람 많은 곳에서 에코백을 매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여행용 숄더백을 다시 챙겼다.

우여곡절 끝에 이제 8시. 저녁을 먹고, 수리올라 해변 옆 토마스 알바 광장에 설치된다는 대형 모닥불을 보러 갈 시간이었다.   


저녁은 그로스 최고의 핀초스 맛집으로 손꼽히는 바르 베르가라(Bar Bergara)에서 가볍게 해결할 생각이었다. 점심을 먹은 간다리아보다 훨씬 작은 공간인데, 하얀색으로 칠한 내부가 디저트집을 연상케 할 정도로 화사했다. 그리고 꽉꽉 차 있었다. 앉을 자리는커녕 발 디딜 데도 간신히 나올 정도니, 편하게 먹는 걸 최고로 치는 평소의 나라면 곧장 포기하고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음, 핀초스를 더 먹어봐야 한다는 의지가 어지간히 강했던 것 같다.


베르가라의 내부

 하지만 음식을 즐기기엔 영 상황이 따라 주지 않았다. 시끄러운 데서, 점원과 의사소통도 잘 안 되고, 서서 먹는 상황이니까. 나는 유모차가 세워져 있는 구석의 입식 테이블에 말 그대로 꾸겨져 겨우 자리를 잡고, 핀초 네 개를 골랐다. 이번에는 이 곳의 대표메뉴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아주 약간 있어서, 감자 크로켓을 가장 먼저 시켰다. 그리고 그냥 눈 앞에 보이는 것 중 맛이 좀 예상되는 것들로 세 개를 더 골랐다. 간다리아에서와 정반대의 전략을 쓴 셈이다.


베르가라의 메뉴판과 내 접시. 앞줄 가운데가 감자 크로켓이다.

사진으로는 작아 보일 것 같은데, 실제론 한국 부페의 가장 큰 접시보다도 더 큰 듯한 접시였다. 요리 크기도 마찬가지로, 원래 핀초스는 두 입만에 먹는 게 정석이라는데 나는 무조건 너덧 입이었다(바게트만 있다면 모를까 그 위에 수북히 음식이 올라갔는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걸 두 입만에 먹는지...).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하며 음식을 먹을 동안, 옆자리 아저씨가 어쩐지 날 자꾸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혼자 다니는 동양인 처음 보나. 사람이 좀 핀초스를 급하게 먹을 수도 있지. 가뜩이나 정신이 멍해지는 소음과 좁은 공간인데, 아저씨의 흘끔흘끔까지 합쳐지자 음식 맛을 온전히 느끼기 힘들었다. 감자 크로켓은 대표 음식답게 괜찮았지만, 이런 고생을 겪으며 사람 많은 핀초스 맛집에 또 가야 하나라는 의문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거리로 나온 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까 그 아저씨 혹시 내 소시에다드 모자 때문에 날 쳐다본 건가?' 이 모자를 쓰기 전까지 아무에게도 그런 시선을 안 받았던 건 사실이다. 행색은 누가 봐도 관광객인데, 먹는 품이나 분위기도 영 튀는데 뜬금 로컬 프로축구팀 모자를 쓰고 있으니 신기할 수도 있었겠지. 분면 무례한 행동이지만, 반대의 상황이었으면 나도 상대의 사연이 약간 궁금하지 않았을까? 입장을 바꿔 상상하자(동양인 관광객이 적은 도시니까... 한화 모자를 쓰고 혼자 두부두루치기집에 앉아있는 라틴계 여성 뭐 그런 거?) 좀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이걸로 저녁식사에 대해선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산 후안 전야를 보러 가기 전 영양 공급으로서의 의미가 가장 컸으니까. 이제 다시 바다로 갈 때다. 수리올라 해변 옆 토마스 알바 광장에서 8시 반에 거대한 모닥불이 점화될 예정이다.


8시 40분쯤 바닷가에 도착했지만, 나는 석양 구경부터 한 후 천천히 알바 광장에 가보기로 했다. 원래 이런 건 시간이 좀 지나 하늘이 어두워져야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달아오르지 않던가.


해변 분위기가 확실히 어제와 달랐다. 산 후안 전야의 핵심인 모닥불을 피운 곳은 아직 없었지만, 누가 봐도 곧 시작될 분위기였다. 먼저, 불 피울 자리를 가운데에 두고 둥글게 모여 떠드는 십대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해 진 후 불 피울 자리를 찜해 놓은 것 같은데, 왜 초장부터 힘빠지게 굳이 서 있는지 나로선 알 도리가 없었다. 모아 놓은 신문지와 박스 같은 것들이 바람에 안 날아가도록 인간 방풍림을 세운 것이라면... 음... 효율이 너무 떨어지는데. 이것이 10대의 에너지인가. 반면 아직 연료를 충분히 못 구했는지 모래사장 안팎을 뛰어다니며 박스를 줍는 아이들도 있었다. 성질 급한 청소년 한 무리가 때이르게 불을 붙였다가 뭔가가 펑! 하고 터지는 소리도 났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십대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가족 단위로 모여 앉은 사람들도 꽤 많았고, 나처럼 혼자 나온 사람들도 군데군데 보였다. 국가가 허락한 대규모 불장난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나 감시 인원이 순찰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해변의 절반에 출입 금지선이 쳐져 있다는 점만이 평소와 달랐다.


해변 옆 울리아 산 위로 뜬 핑크색 구름

불을 피울 도구도, 의지도 없었던 나는 그냥 전날처럼 돗자리를 깔고 누워 여유를 부렸다. 마드리드에서 읽다 만 <이성과 감성>도 오랜만에 펴 보고, 파노라마 동영상도 찍었다. '아이고 애들이 시끄럽네~' 하며 세상 다 산 척하는 것은 덤이다. 전날보다 주변에 사람이 많고 시끄럽다 보니 분위기는 덜 살았지만, 전날보다 좀 더 붉은끼가 도는 하늘이 예뻤다.


해가 수평선 아래로 완전히 넘어가면서, 해변은 점점 활기를 더해 갔다. 십여 명씩 둥글게 둘러앉은 청소년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끊임없이 귓전을울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만 해도 꽤 빈 자리가 있었던 해변은 이제 거의 꽉 찼다. 해도 떨어졌겠다, 큰 불을 보러 갈 시간이 왔군. 나는 돗자리를 접고 걷기 시작했다. 모래에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작은 모닥불을 만든 가족이 보였다. 유치원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부모의 응원을 받아 불 위를 폴짝 건넜다.


처음 올라와 본 토마스 알바 광장 또한 축제날답게 왁자지껄했다. 야외무대, 노점상, 지역 단체들이 붙인 듯한 플랜카드(페미니즘 단체가 쓴 듯한 검은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사이를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쳤다. 대형 모닥불은 광장 안쪽 중앙에 있었다.

정사각형으로 장작을 쌓아 만든 큰불, 내가 2018년 상반기의 하고많은 날 중 바로 오늘 이 곳에 오게 된 이유. 글을 쓰는 이제 와서 가늠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가로세로 2m는 되지 않았을까 싶다. 꽤 많은 사람들이 불 주변을 둘러싸고 서 있었는데,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대가 섞여 있어 좀 시끄럽긴 해도 크게 흥분된 느낌은 아니었다. 한쪽 모퉁이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온 아이들이 불 속으로 종이를 던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모양이 잡힌 종이비행기도, 영수증인 듯한 작은 쪼가리도 있었다. 열 번, 스무 번 넘는 시도 끝에야 겨우 종이 한 장이 거대한 불길에 닿아, 순식간에 작은 재로 변했다. 먼저 던져졌으나 목적지에 닿지 못한 나머지 조각들은 우두커니 불꽃 주변을 지켰다. 아이들은 만족하지 않고 계속 어디선가 태울 거리를 찾아냈다.


반면, 나를 포함한 나머지 구경꾼들은 그저 제각기 질릴 때까지 계속 지켜볼 뿐이었다. 바닷가치고 바람이 세지 않아 연기는 하늘을 향해 똑바로 올랐다. 아직 갈 길이 먼 반달이 동쪽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가운데, 모닥불의 작은 불똥들이 작은 회오리를 그리며 빠르게 위로 솟구쳤다. 작고 연약한 별똥별을 수십 개씩 쏘아올리는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불꽃을 이기지 못한 장작 한 귀퉁이가 무너진다. 아이들이 종이를 던지던 방향이었다.

모양이 흐트러진 모닥불을 뒤로 하고, 나는 흥겨운 음악이 한창인 무대로 향했다. 여성 아코디언 연주자가 포함된 혼성 그룹이 한참 공연 중이었다. 연주자들의 나이와 옷차림, 곡 전반의 분위기는 대중가요적이었지만 바스크 전통 음악의 주요 악기인 아코디언의 존재가 이 곳이 어디인지 상기시켰다. 곡이 끝난 후, 보컬이 "Eskerrik Asko"와 함께 짧은 멘트를 몇 마디 날렸다. 바스크어 감사 인사를 육성으로 들어 보긴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3일간 영어와 스페인어 단어들로 간신히 소통하느라 바스크어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군.

바스크어는 스페인어와 함께 바스크 자치주의 공식 언어이며 이 민족의 정체성에서 핵심적 역할을 차지하지만, 실제 인구 구성에는 이주민도 꽤 많은 데다(내 숙소 주인도 바르셀로나 출신이었다) 실생활에서 바스크어를 쓰지 않는 인구가 과반수를 넘는다. 들리지 않으니 나도 써볼 생각을 안 했던 것 같고. 그래도 이제 발음(글자 그대로 '에스케릭 아스코')을 들어 봤으니, 다음에는 도전해 봐야겠다.

보컬의 멘트가 끝나고, 경쾌한 아코디언 연주와 함께 새 노래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번 노래는 춤곡인 게 틀림없었다. 일반인인 듯한 여성들이 무대 밑에 두 줄로 서 있다가 쌍쌍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키도 나이도 제각각이고, 옷도 평상복인 이 여성들은 한결같이 무척 즐거워 보였다. 전통춤 같은 걸까? 무대 아래에서, 화려한 복장이나 긴장감 없이 편안하게 웃으며 리듬을 따르는 사람들에게서 자연스럽고 활기찬 에너지가 뿜어나와 금세 마음을 사로잡았다. 정화의 불 못지않게 산 후안 전야에 기대했던 게 이런 모습이었다. 우리가 그냥 우리인 채로, 우리가 지금 있는 이 곳의 방식으로, 즐거워하는 것. 만약 다시 오게 된다면 나도 저런 춤을 배울 수 있을까? 그건 어떤 느낌일까?


춤이 끝나고, 나는 무대 근처를 벗어나 사람들이 줄줄이 앉은 돌담 위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어둠이 제법 깔렸다. 돌담 아래로 해변을 내려다보면여기저기에 모닥불을 두고 둘러앉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딱 하나 작고 여린 별만이 떠 있는 바다가 보였다.


(보이시나요 엄청 희미하게 찍힌 저 별과 저 불빛)

어업이 이 지역 사람들의 주요 생계유지 수단 중 하나였던 시절이 있다. 아마 그 때의 산세바스티안은 이런 시간이면 조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고깃배들로 온 해안이 환했을 것이다(레케이티오 등 인근의 작은 항구들은 20년 전까지도 이런 모습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남획으로 인해 연해의 물고기는 점점 귀해지고, 관광이 이 도시의 주력 산업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딱 하나의 별과, 딱 하나의 불빛만 보이는 이 고요한 해변은 과거의 욕심과 후회가 지나간 빈자리였다. 그 빈자리를 통해 들어와 이 도시 사람들을 습격할 나쁜 기운이 무엇일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한참 돌담에 앉아 이런저런 사진을 찍은 후, 밤하늘이 땅으로 떨어진 듯 여기저기 불이 타오르는 해변으로 다시 내려갔다. 어스름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바다를 더 가까이 보고 싶었다. 불을 뛰어넘는 대신 해변 일주를 해 보는 것도 좋겠지.

신발을 벗어들고 맨발로 모래사장에 서자, 예상보다 서늘한 감각에 깜짝 놀랐다. 여전히 별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파도는 센 편이되 위협적일 정도는 아니었다. 천천히 걷다 보니 얇은 바닷물 한 자락이 반투명한 여름용 커튼처럼 부드럽게 발에 감겼다. 신기하게도, 마른 모래보다 훨씬 따뜻했다. 이 모래 위, 바다의 경계 위로만 걸어야겠다. 만조가 다가오는지 물은 계단처럼 층층이 쌓인 형태로 조금씩 영역을 넓혔다. 불을 피우며 축제 중인 사람들의 소음이 작을 리 없건만, 파도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어둡고 따뜻한 물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간혹 보였지만, 절대 다수는 모닥불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니 반대편 끝에 도착할 때까지, 달의 힘에 끌려 걸음질하는 이 해안선은 내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의 말을 알았다면 농담이라도 걸었을 텐데. 나와 바다 사이의 그 닿을락말락한 거리가 마음 편하면서도 즐거웠다.

마침내 해안의 반대편 끝, 출입 금지선에 도착했다. 바다와 작별하고, 백사장 출구 방향으로 발길을 트는 내 걸음에는 미련이나 망설임이 없었다. 자정, 다시 내가 아는 세상으로 돌아갈 때였다.


트위터 @eida_tost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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