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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바스티안에서 매일 석양을 본 이야기 (5)

스페인을 9일간 혼자 여행한 이야기 4편 5화
과거에 투우 경기장 관중석으로 쓰였던 콘스티투시온 광장의 테라스들

산 후안의 날이자 이 여행의 사실상 마지막 날인 6월 24일이 밝았다. 나는 여전히 빌바오건 온다리비아건 다른 곳에 다녀올 생각이 없다. 산세바에 아직 안 간 곳이 많은데 뭐. 그보다는 일요일마다 열린다는 브레차(Bretxa) 수공예 상품 마켓에 가 보고 싶었다. 작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토요 시장에서 꽤 괜찮은 은반지를 샀다가... 하루만에 잃어버렸더랬다. 이번에 만회할 만한 물건을 득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브레차 광장은 어제 생명의 나무가 세워졌던 콘스티투시온 광장 가는 길 근처에 있다. 찾는 게 그리 어려울 것 같진 않았다. 위치도 쉽지만, 이런 시장이 열리면 멀리서 좌판도 보이고 떠들썩한 법이니 멀리서도 잘 보일 게 틀림없다. 나는 아침식사도 제끼고 브레차부터 찾았다. 날씨도, 내 기분도 화창했다.


구글에 치면 이런 거 나오던데...

그러나 브레차에 도착한 나는 상당히 당황한다. 여행 가이드북에도 소개됐던 수공예 마켓이... 가판대 대여섯 개에 불과했다. 당연히 방문객도 별로 없었고, 시장 특유의 느낌도 살지 않았다(너무 안 살아서 아무런 사진도 안 찍었다). 아쉬운 마음에 샅샅이 둘러봤지만, 내 쓸데없이 까다로운 취향에 부합하는 건 찾지 못했다. 아침도 안 먹고 열심히 걸어나왔건만.

실망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일단 뭔가 먹기로 했다. 그런데 여행이 막바지에 들어선 만큼 가 보고 싶던 식당은 이미 대충 들렀고, 새로 맛집을 검색할 열의도 없다. 나는 결국 근처의 평범해 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다(역시나 너무 평범해서 사진도 안 찍었던 듯). 이유는 단 하나, 입간판에 적힌 'DESAYUNOS(아침식사)' 아래 적힌 글자들을 보니 10년 전 이탈리아 여행에서 많이 봤던 아침식사 세트(카푸치노/카페라떼+오렌지주스+빵)를 파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좌절했을 때는 푸짐한 세트지.


참고: 아르헨티나 여행 마지막 날에 비상금 도둑맞고 먹은 아침.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가장 평범한 아침은 저 크루아상 1~3개+카푸치노 한 잔이다

나: 올라? 데사유노스?? (세트나 메뉴라는 말은 모르므로 아침이란 말만 함)

점원: (스페인어)ㅇㅇ뭐 고를래

나: (세트메뉴요!) 데사유노!

점원: (스어) 응 맞아 아침. 뭐 먹을 건데?

나: ???

점원: (포기하고 메뉴판 내밈)

나: ...

나: ...토스트... 카푸치노... 토마토잼...

입간판은 세트 소개가 아니라 그냥 메뉴판이었구나. 그래도 드디어 토마토 토스트를 먹어볼 기회였다. 마드리드에서부터 자주 눈에 띄었는데 한 번도 못 먹어 봤더랬다.

오래지 않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갓 구운 토스트, 커피, 빵 면적에 비해 매우 약소한 1회분 포션 토마토잼, 그리고... 뜬금없는 올리브유가 나왔다.


올리브유가 제일 커...?

나는 올리브유를 무시하고 잼을 뜯었다. 시판 제품이라 그런지 맛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잼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단맛은 별로 없었고, 마멀레이드의 물성을 가진 연한 토마토 소스에 가까웠다. 둥근 빵 덩이를 잘라 구운 토스트는 좋았지만(뭐, 놀랍진 않았다. 빌바오의 동네 마트에서 파는 1유로짜리 바게트도 맛있었으니까), 초콜렛 소스로 소박한 하트를 그린 카푸치노 또한 매우 평범했다. 음, 스페인 사람들의 대충 먹는 아침을 이렇게 체험해 보는군. 그런데 인간적으로 잼이 너무 작잖아. 빵이 아직도 반은 남았는데...설마...?

나는 올리브유를 빵 위에 살짝 부었다. 그냥은 못 먹겠으니 해 본다는 심정이었다. 빵을 한 입 베어물자, 올리브유 향이 평소 요리에 들어갔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하게 느껴졌다. 음... 나쁘지 않군. 맨빵보단 낫다. 그 다음으로, 남은 토마토 잼을 박박 긁은 후 올리브유를 부어서 한 입 더 먹었다.

오, 이건가? 토마토잼만 먹을 때보다 낫군. 진작 이렇게 할걸. 맛도 맛이지만,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방식을 찾았는 게 즐거웠다. 아마 유명한 카페에 갔다면 더 섬세하고 고급스럽거나 예쁜 음식을 먹는 대신, 이런 사소한 발견에 신이 나진 않았을 것 같다. 이런 맛에 일정 헐렁하게 짜는 버릇을 못 버리는 거겠지.


전통 뮤직 스타트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음악소리에 이끌려 콘스티투시온 광장 쪽으로 걸어갔다. 산 후안의 날을 기념하는 야외 연주회가 막 시작된 찰나였다. 악단의 구성(중노년 남성이 압도적)과 곡 분위기로 짐작컨대 어제 알바 광장에서 들었던 것보다 더 전통음악에 가깝지 않나 싶었는데... 음... 특별히 내 취향과 통하진 않았다. 약골답게 서 있는 것도 에너지가 많이 들었고. 나는 금방 연주를 포기하고, 느릿느릿 산 텔모 박물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누에스트라 세뇨라 델 코로 성당의 정면

박물관에 가다 보니 바로크 풍의 흰 성당이 좁은 길가에 우뚝 서 있었다. 누에스트라 세뇨라 델 코로(바스크어로는 '코루코 안드레 마리아렌') 성당이다. 그러고 보니 이 시점까지 성당에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다. 신앙은 없지만 그간 가톨릭 문화권에 여행 가면 한두번은 꼭 성당에 들렀던 것 같은데, 이번에도 빠뜨릴 수 없지.

내부는 아주 크지 않아 아늑했고, 작은 전시가 두 건 진행 중이었다. 특히 예배당 뒷편에서 진행 중인 현대미술 전시엔 성경을 날카로운 물체로 관통해 만든 작품도 포함돼 있었다. 설명을 보니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 의도긴 한데, 그래도 교회에서 성경을 훼손한 작품을 보는 날도 오는구나. 그것도 부속실도 아니고, 십자가와 설교단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위치라니.

그리고 여행 중 첫 성당에서 거의 늘 그래왔듯, 20센트로 촛불을 켜고 무사 귀국을 기원하는 시간도 가졌다. 내겐 무신론자 나름의 종교시설 존중 제스처인데, 음, 지금까지는 늘 소원이 이뤄졌다.

성당 내부. 웅장하게 찍혔지만... 평범한 크기입니다

(산세바스티안의 대성당에는 결국 못 들렀다. 여행 초반에 콘차 입구 근처에서 저 멀리 대성당 첨탑을 보긴 했었는데, 꽤 멀어 보여서 다가갈 의욕이 안 생겼다. 지금 찾아보니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고딕 성당이라고 한다.)

성당에서 나온 후 채 10분도 걷지 않아, 산 텔모 박물관이 보이기 시작한다.

산 텔모 박물관 입구

박물관은 안팎 모두 한산했다. 입장료는 6유로인데, 산세바스티안 카드(관광객용 다회권 교통카드)를 내면 10% 할인되며 오디오 가이드(한국어는 없음)가 무료 제공된다. 내부는 신축처럼 깨끗했고, 방문자가 적어서인지 뮤지엄샵은 없었다.

박물관의 중앙 복도

박물관의 시작은 예전에 예배당이었던 1층의 전시공간이다. 가장 장엄하고, 상징적이고, 기억에 강하게 남을 만한 장소다. 노르스름한 조명이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가운데, 바스크인의 문화와 역사를 담은 11개의 연작화가 사면을 따라 걸려 있었다. 작품을 그린 카탈루냐인 화가의 이름을 따 명명된, 세르트(Sert) 연작화다.


비뚜름하게 찍힌 거 같은데 대충 느낌만 봐주세요 보정하기가 너무 귀찮네요 흑흑

20세기 초에 그려진 연작화 속 풍경들은 한결같이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에너지로 가득하다. 바스크 인들은 춥고 흐린 이베리아 반도 북동부와 프랑스 북서부를 터전으로, 여러 외부 세력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수천 년간 독립적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그런 역사에 강인함과 고집이 담기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이 선택한 생계 수단도 이러한 인상을 뒷받침한다. 땅이 비교적 척박해 농업에만 집중할 수는없었다(훗날 옥수수의 도입과 농경 방식의 개선으로 상황이 바뀌긴 한다). 바스크 인들은 각종 전문 분야에 뛰어들어 전 유럽을 누볐다.

민족의 제단

11점으로 구성된 세르트 연작은 철기 제작, 조선, 포경 등 바스크인들이 진출했던 대표적 분야들을 하나씩 담았으며, 전시실 중앙  <민족의 제단>에는 항해 중 폭풍우를 만난 바스크 선박이 어부의 수호성인 성 텔모 및 이 도시의 수호성인 성 세바스티아누스에게 구조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성 텔모가 누구인지는 다소 혼란스러웠지만, 세바스티아누스는 특유의 '화살 맞은 세미누드' 도상 덕분에 알아보기 쉬웠다. 이 성인은 서구권에서 LGBTQ의 비공식 수호성인으로 통하는데, 모르긴 몰라조 분명 저 도상 때문일 것 같다.


헐벗고 몸을 뒤트는 게 트레이드마크

이 웅장한 연작을 살펴보다 보니, 한 가지 빠진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7개 장면을 묘사한 11폭 연작화니 결코 적은 양이 아닌데도, 그림 속에서 여성을 찾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 여성 포경선원이나 대장장이가 흔하진 않았을 것 같다. 여성 참정권조차 거의 확보되지 않았던 20세기 초에 여성을 일부러 그려 넣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고. 하지만 실제 역사에 분명 있었을 여성 위주의 활동이나 풍습들이 '바스크 정체성'에서 좀 더 강조되었어야 한다는 아쉬움은 막을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며 연작의 끄트머리에 도착하자, 마침내 여성이 중심에 선 그림이 한 점 보였다. 마녀 사냥을 주제로 한 작품이었다.

으으음.

강인함이 어찌 배 짓고 철 만드는 남자들만의 전유물이겠는가. 아마 어제 알바 광장에 검은 현수막을 내건 이 지역의 페미니스트들도 그런 마음으로 행동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박물관 건물과 하나처럼 이어져 보이는 이웃 건물들

2층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시대별 유물 전시가 시작된다. 로마 시대부터 20세기 후반까지의 시대 변화와 분야별 발전 등을 폭 넓게 아우르는 전시니, 나처럼 이 지역에 얄팍한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적절하다. 한국에서 예습했던 내용들을 직접 확인해 보는 즐거움을 느끼며, 가볍게 둘러보았다. 계속되는 EBS 분위기를 개의치 않눈 분들을 위해 몇 가지만 소개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유물 사진을 안 찍었길래 당대 포경선원들을 담은 판화를 급히 공수해 왔습니다...

먼저 포경. 바스크 어부들은 중세 유럽 최대의 고래 학살자였다. 연근해 고래의 씨를 일찌감치 말 린 후(새끼와 다니는 어미 고래를 주 사냥 목표로 삼았던 게 한 가지 원인이라고 박물관도 솔직히 인정한다), 점점 활동 범위를 확장해 최종적으로는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인근 수역까지 진출했다는 사료가 있다. 그러나 이토록 번성하던 바스크 포경 산업은 16세기 이후부터 점차 각국이 영해 개념을 강화하면서 쇠퇴한다. 

포경업이 아니더라도, 발달한 항해술과 조선술을 활용할 길은 있다. 많은 바스크 인이 바다 용병(사나포선)으로 활동하거나 선원으로 고용된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아마 마젤란의 세계일주 탐험대일 것이다. 바스크 선원이 상당수 고용됐을 뿐만 아니라, 마젤란의 사후에 탐험대의 귀국을 지휘한 대리인 또한 바스크 사람 후안 세바스티안 엘카노다. 그의 항해는 1층의 세르트 연작에서도 한 폭을 차지했을 만큼, 바스크 역사의 대표적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외국에 나가면 그 나라 사람들의 옷차림을 구경하는 게 취미인 내게 제일 재미있었던 전시물은 역시 모자였다.


15세기 바스크 인들 사이에서 부의 상징으로 유행했던 모자 디자인들을 모아 복원한 것이다. 게다가 제작자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즉 모터백을 만든 그 회사 창업자다(이 민족이 배출한 가장 유명한 현대 디자이너겠지). 천일야화 속 바그다드에 어울릴 법한 터번과 고깔모자, 천 장식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세르트 연작화가 암시하는 가부장적 장엄함이 이 지역의 전부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의상들이런저런 의상들

이 조용한 박물관에서는 모자 외에도 잘 보존된(혹은 복원된) 전통의상을 여러 벌 볼 수 있다. 나는 농민들의 축제 의상이 마음에 들었다. 선명한 색대비와 자수, 린넨 같은 소재들의 투박한 듯 담백한 느낌을 예전부터 좋아했거든. 전시관에 소개된 바스크 전통의상도 그런 분위기였다. 그 중 하나는 축제 상황에 맞게 바스크 전통악기 아코디언을 멘 모습이었는데, 오디오 가이드를 눌러 보니 이런 설명이 나왔다. "사제들은 아코디언을 악마의 악기라고 비난했습니다. 교회가 정한 죄악인... 춤을 추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뜻밖의 내용에 웃음이 터졌다. 무슨 청교도도 아니고! 예수회의 창시자 로욜라를 배출한 동네답게, 금욕적 신앙 전통이 없었다곤 못 하겠군. 그러거나 말거나, 바스크인들의 아코디언 사랑은 조금 전 내가 목격했듯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산세바스티안이 유럽 부유층의 고급 휴양지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20세기 초의 유물인 정교하고 섬세한 검은 드레스도 인상적이었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과는 별개로 벨 에포크 미학에 살짝 사족을 못 쓰는... 취향의 굴레지 뭐. 여담으로, 산세바 시내에는 이 때의 흔적이 아직 여럿 남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시청으로, 콘차 해변 근처에 서 있는 이 석재 건물는 원래 벨에포크 관광도시의 필수요소인 카지노로 지어졌던 것이다(!).


20세기 중반쯤의 메뉴판/벨에포크 카지노의 유물들20세기 중반쯤의 메뉴판/벨에포크 카지노의 유물들

벨 에포크 외에도, 19세기~20세기 전시에는 전반적으로 생활사 박물관적인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었다. 바스크 지역의 양대 축구팀인 아틀레틱 빌바오와 레알 소시에다드의 초창기 유니폼, 고급 레스토랑의 의자와 식탁 및 메뉴판, 20세기 중후반 산업발전기 당시의 각종 생산품(유물이라기보단 '빈티지 굿즈'라 부르고 싶을 만큼 예쁜 게 많았다)등등. 그 자체로는 특별하지 않았을 작은 유물들이 세심한 조형 속에서 과거를 재현하고 있었다.

아틀레틱 빌바오(빌바오)/레알 소시에다드(산세바스티안)

이렇게 이것저것 구경한 끝에 전시 말미, 20세기 후반 프랑코 독재 정권의 종말과 바스크 민족주의의 발흥을 다룬 파트에 도착했다. 역시나 여기서도 여러 민족주의 단체의 엠블렘(빈티지 뱃지와 인쇄물!)이 모여 있다. 예쁜 것만 골라 열심히 찍던중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ETA에 대해선 별 언급이 없는 것 같은데?'

사실 여행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바스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 중의 하나가 ETA였다. 몇 권인지는 잊어버렸지만, 어린 시절 애독서였던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북아일랜드 독립을 주장하는 IRA와 함께 유럽의 대표적 분리주의 무장단체로 등장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바스크 지역에 대한 내 얄팍한 인상에는 늘 약간의 피 냄새가 묻어 있었다.

흘러간 민족주의 단체 로고들

ETA는 20세기 중반, 프랑코 군사 독재 시기에 태어났다. (산 텔모 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듯) 프랑코 정권의 바스크 언어와 문화 말살 정책에 맞서 독립을 요구했다. 이들은 납치와 암살, 자동차 폭탄 테러 등의 방식으로 스페인 정부 관계자들을 공격했는데, 프랑코의 정치적 후계자였던 루이스 카레로 블랑코 총리 암살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 ETA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사회 인사나 '혁명세'를 내지 않은 기업인 등도 납치 대상이 됐다. 이 시기의 ETA는 독재 항거라는 명확한 정체성이 있다 보니 상당히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심지어 프랑스 정부도 체포 위기에 처해 국경을 넘은 ETA 단원들을 못 본 척할 정도였다. ETA는 프랑스 바스크 지역을 후방 기지로 삼아 싸움을 계속했다.

그런데 프랑코 사후, 스페인이 민주화되면서 상황이 바뀐다. 민주정부는 학교에서의 철저한 바스크어 교육, 안내판의 스페인어-바스크어 병기 등 민족 정체성 보존 정책에 동의했고, 바스크 자치주 정부에 상당한 권리를 인정했다. ETA의 존재 의의가 약해진 것이다. 그러나 완전 독립을 원하는 강경파는 오히려 더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다. 이제는 스페인 정부 인사만이 아닌 일반 시민들까지도 무차별적 테러의 희생양이 되었다(대표적으로 바르셀로나의 한 슈퍼마켓에 대한 폭탄 테러가 있다). 이 과정에서 점차 ETA에 대한 국내외적 지지도 감소한 것은 물론이다. 결국 ETA의 테러 행위는 80~90년대 초에 정점을 찍은 후, 점점 쇠퇴해 2011년에 공식으로 활동을 종료했다.


구시가지

2018년 6월의 산세바스티안, 막 여름이 시작된 이 세련되고 활기찬 도시에서 ETA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짧은 여행 기간 동안 이 도시에서 테러는커녕 소매치기나 노숙자도 보지 못했다. 전면적인 테러와 폭력의 시대는 분명 끝났고, 바스크 사람들은 이제 스페인과 EU의 일부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전시를 마치고 텅 빈 계단을 따라 다시 마주친 옛 수도원의 중정은 그늘진 데 하나 없이 싱그럽게 빛나는 녹색 잔디로 꽉 차 있었다. 건물 너머로 서 있는 야트막한 산봉우리에 이쿠리냐(Ikurriña), 즉 바스크 기가 꽂혀 있었다. 바스크 어에서 이쿠리냐는 '깃발'을 뜻하는 일반명사이자 '바스크 기'를 뜻하는 고유명사이기도 하다. 불과 몇십 년, 가깝게는 몇 년 전에 '그 깃발'을 위해 죽거나 죽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공 박물관인 산 텔모가 담으려면 아마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이쿠리냐이쿠리냐

산 텔모 박물관을 나온 후, 나는 위장이 좀 나아진 것을 자축할 겸 햄버거와 콜라로 점심을 먹은 후 숙소로 돌아갔다. 늘 그랬듯 그냥 쉰...건 맞지만, 그에 앞서 숙소를 200m 거리의 다른 호텔로 옮겼다. 아무리 200미터라 해도, 유럽의 돌 포장 위에서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게 얼마나 성가신 일인지는 많이들 아실 것이라 믿는다.


내가 유럽에서 먹어 본 제일 싱거운 음식 1위였던 이날의 점심

체크인을 마친 후, 남은 납작복숭아를 까먹으며 새 숙소에서 세시간쯤 휴식을 취했다. 방이 달라지긴 했다만 오늘도 월드컵은 진행 중이고, 오늘도 복숭아와 빵은 맛있군. 호텔의 무료 간식이니 비쌀 리 없는 빵인데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 감탄했다. 

이제 남은 시간엔 뭘 할까?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당연히 마지막으로 해변에 가야지. 간식을 넉넉히 먹어 끼니 생각도 없고, 해보고 싶었던 건 이제 다 했다. 제일 좋았던 걸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라니, 가 보고 싶은 덴 많은데 시간은 늘 부족한 한국인 여행자에겐 드문 사치다. 나는 카탈루냐 광장을 거쳐 슬렁슬렁 수리올라 해변으로 걸어갔다.


바닷물에 어제의 흔적이 틀림없는 까만 잿가루가 많이 있다는 걸 빼면 해변은 다른 날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이 곳의 (귀국 후 내가 겪게 될 폭염과 대조되는) 온후한 여름, 며칠간의 개근으로 인한 익숙함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 곳이 집에서 9600km나 떨어져 있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다못해 비행기 직항만 있었더라도... 그렇게 멀고 낯설기 때문에 굳이 온 건데, 이제는 정이 들어 버렸다.

여름해가 지는 속도에 이제는 익숙해졌다. 일곱 시만 해도 탄탄하게 제 자리를 지키지만, 어느 시점부턴가 움직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좀 떨어진다 싶어지면 그 때부터는 순식간이다. 해는 겨울날 땅에 닿은 눈송이처럼 바닷물에 녹아 없어지고, 사라진 자리에는 홍시 색깔의 그림자만 남는다.

하지만 완전히 똑같은 두 개의 석양은 없는 법이겠지. 이 날은 앞선 이틀과 달리, 서쪽 하늘에 계속 구름이 떠 있었다. 완벽하게 맑은 하늘의 균일한 색조보다는 이런 것이 더 아름다울 때가  많다는 걸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아홉시 오십오분. 해가 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서퍼들 뒤로, 열대의 꽃처럼 화려하고 밝은 오렌지색 하늘이 있었다.

이 여행의 마지막 석양, 여행의 클라이막스로 남을 게 틀림없는 순간. 나는 카메라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액정으로 보니 실제보다 붉은기가 많이 돌아, 구름이 거대한 불꽃으로 보일 정도였다. 뭐, 그런 건 보정하면 되니까. 나는 해상도를 최대로 높인 후, 설렘에 들떠 셔터를 연달아 눌렀다. 당시의 기분으로는 사진전 대상이라도 탄 것 같았다(이후 이 뽕을 못 이겨 공모전 경력 한번 없는 사람이 다짜고짜 모 메이저 여행사진전에 도전했고, 시원하게 물을 먹었다).

날씨는 기본적으로 운이다. 그러나 이 때 내가 느낀 감정을 표현하려면 객관적인 기술은 잠시 접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마음에 드는 사진도 별로 못 찍었고, 몸도 안 좋고, 외로울 때가 많았던 여행. 일 년 15일의 연차휴가를 쪼개 여행을 다니는 사람에게 한 도시 4박 5일은 (아무리 아파서 쉬어야 했대도) 절대 적지 않은 투자다. 다행히 결과가 좋았다. 볼 게 너무 많지 않아 부담스러울 것이 없는, 바다가 가장 큰 자랑인 산세바스티안. 안정감과 편안함이 필요했던 나는 이 도시에 익숙해지며 조금씩 기운을 되찾았다. 그 과정 끄트머리에 찾아온 이 날의 석양은 나와 이 도시가 좋은 인연이라는 최종적 증명 같았다. 또, 더 나아가 수리올라 해변과 산세바스티안 시가 주는 이별 선물이라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런 상상이 마음을 더욱 벅차게 했다. 


이렇게라면 잘 끝난 게 틀림없다. 나는 내일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갈 것이다.

정말 그랬던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트위터: @eida_tost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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