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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바스티안에서 돌아오는 길 이야기

스페인을 9일간 혼자 여행한 이야기 4편 6화



원래 이 날은 아침 9시 비행기로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6시간 정도 관광 후 밤 10시 비행기를 타는, 매우 알찬 일정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며칠 전 빌바오에서, 식도염으로 한참 고생하던 나는 더 이상 힘든 여행은 안 하겠다며 비행기를 최대한 늦은 것으로 바꿨다. 그 결과, 산세바스티안에 머무는 시간은 다섯 시간(새벽 6시 반 공항버스를 오후 1시로 바꿈) 늘어났다.

나는 이렇게 생긴 시간 동안 엄청나게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사러 가기로 했다. 도착 둘쨋날 콘차 해변에서 지나가던 사람이 들고 있는 걸 보고 반했던 에코백인데, 전날 구시가지를 배회하다가 이걸 파는 상점을 발견한 것이다. 일요일 휴무로 문이 닫힌 가게 안을 애타게 들여다보기만 하다가, 다행히 내일 시간이 있으니 사러 오자고 다짐했더랬다. 1시 버스인데 12시 오픈이라니 운이 좋군.

가게가 열리길 기다리며, 나는 오이아르춘에 갔다. 지난 번에 가장 맛있었던 프티가토와 안 먹어본 디저트 하나를 샀다. 콘차 해변 끄트머리의 어촌(이었던 건물들)을 산책하다가 여유롭게 먹을 생각으로 테이크아웃했다. 결과적으로는 공항행 택시에서 하나,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하나, 허겁지겁 먹었다. 그냥 그 자리에서 먹었으면 좋았을걸.


이 날도 날씨는 어찌나 맑았는지. 월요일인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일광욕과 수영을 즐겼다. 선착장 근처에선 소년들이 다이빙 시합을 하고, 체력을 이유로 내가 포기했던 우르굴 산을 오르는 관광객들이 멀리 보였다.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떠나야 한다는 게 많이 아쉽진 않았다. 마지막까지 좋은 추억 잘 만들고 돌아간다고,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잘 끝난 것 같다고, 콘차 해변에 인사했다. 


문제의 에코백. 디자인도 맘에 들지만, 바스크어가 써 있다는 점이 더 큰 매력이었다. 이 글귀는 도시의 수호성인인 세바스티아누스 축일(1월 20일)에 시민들이 드럼을 치며 부르는 축가, 일명 '탐보라다'의 도입부다. 그 뜻은(영어 번역을 중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Sebastian bat bada zeruan
Donosti bat bakarra munduan
하늘에 세바스티안이 있고
땅에도 하나뿐인 세바스티안이 있다네

hura da santua ta hau da herria
horra zer den gure Donostia!
저쪽은 성인, 이쪽은 도시
그것이 우리의 산세바스티안!

도시 축가, 그 중에서도 이 도시의 바스크어 이름Donostia가 박혀 있는 앞 구절이 적혀 있다. 너무 촌스럽지 않은 기념품을 찾는 관광객에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특히 그 관광객이 평소 에코백에 별 뜻 없거나 문법이 틀린 외국어가 써 있는 걸 싫어했던 나라면 더욱 그렇다. 나는 이 에코백을 귀국 후 줄기차게 들고 다녔으며... 지금까지 그 어느 친구와 지인도 글자의 뜻을 먼저 묻지 않았지만, 그래도 맘 내키면 설명했다. 지금 그러듯.

그리고 하나만 사긴 아쉬워 같이 산 작은 액자. 이 디자인샵에서 만든 산세바스티안 컬러 팔레트 컨셉 시리즈의 1번, '게르니카 녹색'이다. 스페인 내전기 당시 독일 전투기에 폭격당해 피카소의 작품 이름이 된 그 지역인데, 이 마을 중앙의 오크나무인'게르니카의 나무'는 14세기부터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는.바스크 민족의 상징이다. 이 녹색이 컬러 팔레트 1번일 만하다.

기념품을 사고 수마르디아 대로로 나왔다. 이제 남은 여유시간은 15분 정도. 곧장 숙소로 돌아가서 짐을 찾아 버스터미널에 가면 여유로웠겠미만, 나는 전날 봤던 신발을 한 번만 더 사고 싶다는 욕구에 굴복한다. 15분만에 사고 나서 시간을 계산해 보니...음...아까 내가 잘못 계산한 거 같다. 사실은 15분이 아니라 5~10분 정도밖에 여유시간이 없었다. 그냥 출발했어야 했던 것 같은데, 어떡하지...?


(문제의 신발. 이후 발생한 재앙에도 불구하고, 매우 좋아하면서 여름 한철 잘 신었다)


답은 아마 택시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눈 앞에 안 보였다. 어떻게 잡는지도 몰랐다. 마침 (탈 줄 아는) 버스가 왔길래 버스를 잡아타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가 터미널과 가까우니 아슬아슬하게 가능할 것 같았다.

문제는 짐과 유럽의 돌길이었다. 내게 그 거대한 가방을 들고 뛸 팔힘이 있을 리 없으니, 15kg짜리 캐리어는 유럽의 울퉁불퉁한 돌바닥 포장에 계속 부딪혔다. 뛰기는커녕 빨리 걷기만 해도 숨이 찼다. 왜 소요 시간을 과소평가했을까? 잘 아는 길이라 생각했으니까. 나는 세바스티아누스 성인에게 비는 마음으로 힘을 짜냈지만, 독자들도 아시다시피 이런 상황에서 힘이 되는 이미지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놈의 터미널은 왜 지하에 있는지. 결국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캐리어를 손에 들고 질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는?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빌바오 공항행 버스를 눈 앞에서 놓쳤다. 으으으.

어떡하지? 다음 버스는 너무 늦다. 빌바오 시내행 버스를 타고 거기서 택시로 갈아탈까? 시내와 공항이 나름 가깝긴 하지만, 빌바오행 다음 버스는 30분 후에 있다. 과연 시간이 넉넉할까? 한편, 구글에 대체 교통편을 검색하니 리무진 서비스 업체 같은 게 떴다. 100유로를 훌쩍 넘은 만만찮은 액수는 그렇다치고, 스페인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하래서 더 진행할 수 없었다. 난 데이터만 되는 영국심이었거든(으으). 영국 번호를 시험삼아 넣어보고 싶어도, 번호가 적힌 종이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으으으). 아니면 빌바오-바르셀로나 비행편을 뒤로 늦추는 방법은 없을까? 항공사 홈페이지를 확인해 본 결과, 한 타임을 늦추면 바르셀로나-인천 국제선 출발 한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한다. 연착 가능성을 고려하면 이것도 곤란하다.

결국 나는 우버를 다운로드하면서, 터미널의 안내판을 따라 택시 승강장으로 갔다. 둘 중 뭐든 먼저 잡히는 걸 타겠다는 심산이었다. 택시의 경우 최소 15만원은 깨진다는 정보가 있었고(산세바스티안 시내에서 빌바오 공항까지의 거리는 약 100km), 거리를 감안할 때 우버도 비슷하리라. 그래도 한국에는 가야 하는 걸 어쩌랴. 여행 내내 잘 돌아가던 3G 네트워크가 유독 우버앱 다운로드에는 맥을 못 푸면서, 결국 최종 선택은 택시였다. 한국식으로 카드 결제기가 붙어있을 리 없는, 그래서 현금만 받을 것 같은 택시. 마지막 날이라 유로화 남은 게 없었지만, 비상금 달러화와 신용카드를 믿고 일단 탔다. 목적지를 들은 기사는 밝은 목소리로 걱정 말라고 말했다. 그래, 지금 출발하면 괜찮겠지...

공항 가는 길은 닷새 전 빌바오에 산세바로 올 때와 어느 정도 겹쳤던 것 같다. 나는 지쳤으나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채, 5일 전과 비슷해 보이는 바스크의 산줄기와 빨간 지붕 집들이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여행 기간에 별로 비싼 걸 안 샀다고 생각했는데, 말 그대로 길바닥에 돈을 뿌리는 느낌을 완전히 지울 순 없었다. 그동안은 초심자의 운과 조심성으로 별 탈 없이 다녔던 것 같은데, 이젠 빼도 박도 못할 중급자가 된 모양이다. 무용담이 쌓이지 않게 조심하자고 다짐할 수밖에.

중간에 잠시 교통 정체가 있었지만, 택시는 제 시간에 빌바오 공항에 도착했다. 요금은 예상보다도 조금 비싼 155유로(으으으으). 조심스레 현금 얘기를 꺼내자, 기사님은 걱정 말라며 캐비닛에서 쿨하게 카드결제기를 꺼냈다. 아, 그러네, 스페인도 선진국이었지. 눈에 안 보여서 없는 줄 알았다. 무시해서 죄송합니다, 하하하하하.

결제를 마치고 택시와 헤어질 때가 왔다. 기사님은 네 모자가 맘에 든다며(그렇다, 머리 감기 귀찮아서 레알 소시에다드 모자를 쓰고 있었다) 잘 가라고 인사했다. 훈훈하게 "아우파 레알!"을 외치며(레알 소시에다드의 애칭이 '레알'이다) 헤어지는 모습만 봐선 내가 이 팀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줄 상상하기 어려웠으리라. 응원구호는 어쩌다 알고 있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이후로는 큰 사건사고가 없었다. 비행기는 제 시간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했고, 나는 공항에서의 3시간 동안 주변에 뿌릴 군것질거리를 사기 시작했다. 공항 면세구역 내 Fargas라는 상점에서 적당한 가격의 무난한 초콜렛을 갯수 맞춰 산 후, 내 몫으로도 뭔가 사고 싶어 이걸 골랐다. 무슨 맛일지 상상이 잘 안 된다는 이유였다.



사진은 홈페이지 캡쳐이며, 가격은 12.65유로. 내가 사먹어 본 공산품 디저트 중에서 손꼽히게 인상적이었다. 내가 아는 '누가'와는 질감도 구성도 확연히 달랐다. 단맛과 짠맛과 라임향이 어우러진 맛은 한국 웬만한 카페의 디저트에서도 찾기 힘든 복합적이고 고급스러운 매력이니, 디저트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도전해 보시길. 나는 기회가 된다면 시리즈 다른 제품들도 꼭 사보고 싶다.

초콜렛이 가득한 봉투를 들고(너무 길기만 한 얘기라 여기에는 생략할) 면세 환급 때문에 공항을 한 바퀴 돈 후, 겨우겨우 늦지 않게 게이트에 도착했다. 귀국편 게이트 근처에 도착하면 으레 느껴지는 '반쯤 집에 왔다는 서글픔'이 이번만큼은 없었다. 어서 열몇 시간 동안 비행기 의자에 앉아 손발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이 정도면 잠도 잘 올 게 분명하다. 과연, 나는 첫 번째 기내식을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이 희미할 정도로 초반 몇 시간을 열심히 잤다.

하지만 이 비행 내내 잠만 잤다면 이 여행기는 아마 지난 화에서 끝났을 것이다.

러시아 상공 어드메에서 잠이 깬다. 기내는 소등 상태로, 승무원이나 화장실을 오가는 승객들의 엇자락이 내 팔꿈치 끝을 가끔 스친다. 자는 새 엔딩 크레딧이 끝까지 올라가 버린 영화를 끄고 화장실에 다녀오니 좀 잠이 깬 느낌이다. 그리고 짜증도 같이 깨어난다. 돈이 생각보다 많이 나갔고, 몸도 고생했다. 공항버스부터 공항 세금환급 뺑뺑이까지 오늘 하루 몇 번이나 실수를 저지른 데 다시 화가 났다. 그 결과로 인해 전혀 재충전되지 않은 느낌인데, 내일 당장 출근해야 한다. 평범한 출근도 아니고 새벽 다섯시 반에 일어나 내려가는 여정이다. 그런데 그놈의 식도염은 아직도, 아직도 완치가 안 돼 아무거나 먹지도 못하고, 먹을 때마다 뻐근하다. 돌아가면 바로 할 일도 많다. 그 주 주말에는 아버지 환갑이 있으니 못 했던 준비도 마쳐야 하고.

객관적으로도 꽤 부담스러운 상황일 것이다. 그런데 이걸로도 모자라, 내게는 조금의 부정적 상황도 쉽게 존재적 위기로 증폭시켜 버리는 반응 기제가 있었다. 공항버스를 놓치고 택시를 타는 등 온갖 사건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돌이켜 보자. 나는 누구에게든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여러 명에게 카톡을 보냈지만, 막상 이를 본 친구들에게는 상당히 덤덤한 척했다. 친구들이 걱정할까봐...라기보다는, 내가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게 스스로 용서가 안 돼서 별 일 아닌 척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 괜찮은 척하기란 나의 고질병이다. (그러고 보니 이 여행기에서도 빠졌는데) 마드리드 시내에서 공항으로 갈 때 지하철을 잘못 타서 애가 탔던 걸 아무에게도 말 안 한 것도, 식도염이 가장 심할 때 엄마의 카톡이 왔지만 아무 티 안 냈던 것도, 오늘 택시 사건에서의 내 태도도 모두 같은 기질의 다른 증상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번 여행은 유난히 이런 종류의 문제 발생-억압이 자주 발생했다.

그 결과, 그 동안 억눌린 감정들이 마음 여기저기에 축적되어 있다가 비행기에 타서 긴장이 풀리자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사실 안 괜찮다'는 말이 사무쳤다. 그러나 말할 데가 없었다. 비행기 안이니까. 금세 괴로워졌다. 반 년간 기다려 온 스페인 여행이 이렇게 끝난다니, 이렇게 한국으로 돌아간다니?

나는 무척 우울해졌다. 여행의 좋았던 점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이 때는 역부족이었다. 전날 저녁 석양의 아름다움이나, 오늘 아침에 마지막으로 콘차에 들렀을 때의 상큼한 심정마조도 지워져 버린 듯했다. 그 어떤 좋은 기억도 지금 내가 느끼는 외로움과 분노에 비하면 우스꽝스러운 정당화로 느껴졌다. 이 시점의 내게 필요한 것은 좋은 기억을 꺼내 성급한 자기설득을 시도하는 게 아니라, 피로와 후회와 스트레스를 일단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서투른 사람이었다. 게다가 장소가 답답하고 좁고 다른 사람으로 가득한 기내라면, 분출구를 찾지 못한 감정을 다루는 데 더욱 힘들었다.

이 때, 약간의 사건이 발생한다. 처음엔 내가 기내에 들고 간 일회용 라면의 취식이 거부됐고, 그 다음은 내가 앉은 열 창가석(나는 복도석, 가운데는 공석이었다)의 여성 승객과 '옆자리 사람과 트러블이 생긴' 다른 승객이 자리를 바꿔도 되겠냐는 승무원의 요청이었다. 둘 다 내 마음 속의 문제와 아무 상관 없는 사안이다. 그러나 승무원의 '죄송하다'는 말을 그렇게 들어 넘길 수 없었다. 누군가가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꾹꾹 눌러 놓은 감정을 복받치게 했던 것이다. 결국, 한 번 기침하면 병균이 닿을 거리 안에 수십 명이 불편하게 잠들어 있는 기내 한복판에서, 나는 소등의 어둠을 틈타 기어이 훌쩍이기 시작했다. 영문을 알 리 없는 승무원이 당연히 당황했지만, 이런 걸 뭐라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눈물이 좀 그칠 무렵, 내가 신경쓰였는지 (이 소동으로 인해 자리를 옮기지 않게 된) 옆자리 아주머니가 사탕을 하나 건네 주었다. 사탕을 싫어하지만, 그저 거절하는 게 피곤해 입에 넣었다. 뜻밖에도 맛있었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강하지 않은 단맛이 신선한 허브 느낌과 좋은 조화를 이뤘다. 내 인생에 맛있는 사탕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먹은 누가가 마지막이었는데. 그렇다면 최소 20년만이다. 나는 조금 놀라 포장지에 쓰인 스페인어를 읽었다. 레몬그라스 맛이었다. 고맙다고 바로 말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몸 안에 차 있는 묵은 감정이 너무 많아서 입을 열기 어려웠다. 얼마나 많은 말들이, 해야만 했던 말들이 이런 식으로 짓눌려 부서지거나 그 또한 묵은 감정으로 변해갔던가. 나는 너무 오래 이렇게 살았다.

이후로는 별다른 기억이 없다. 잠들었다, 깼다, 뭘 좀 먹었다가, 다시 잠들었다가, 자기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사람에게 디즈니 영화는 꽤 쓸모있기 때문에 <코코>를 보며 기내식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착륙이 가까워졌다. 내리기 전에 겨우 용기를 냐 아주머니에게 사탕 맛있었다는 인사를 했고, 아직도 내가 신경쓰이는 듯한 승무원에게 괜찮은 사람의 표정을 보여주려 애썼다.

비행기가 마침내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한다. 나는 언제 울었냔 듯 덤덤해진 마음으로 출국심사대를, 수하물 벨트를, 입국심사장을 지나친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난 건지, 이게 무슨 이야기였는지 더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나 이 고민은 곧 돌아올 것이다. 여행은 어땠냐고, 당연한 질문을 모두가 인사처럼 던질 것이다. 귀국 비행기에서 실망의 눈물을 터뜨린 여행을 좋은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혼란은 곧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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