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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온 후의 이야기

스페인을 9일간 혼자 여행한 이야기 에필로그


서론, 1편 링크:
https://eidawrites.postype.com/post/2130562
https://eidawrites.postype.com/post/2150472


돌아온 지 이 주가 넘었고, 나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지난번 스페인 여행은 성공이었을까? 나는 산세바스티안을 좋아하는 걸까? 주변엔 이미 좋았다고 말했는데, 그게 과연 진짜 내 감정이었나?

그렇다, 나는 내가 남들에게 한 말을 스스로 확싱할 수 없었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싫어할까봐, 이미 써버린 돈과 시간을 후회하게 될까봐 좋았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한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의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는 실패를 극도로 두려워하고 후회가 많은 면도 있지 않은가? 혹시 후회가 무서워 자기 자신을 속이려 하는 거라면? 귀국 비행기에서 울었던 사실을 지울 순 없으므로, 이런 의심은 심중에 작은 또아리를 틀고 있다가 방심하고 있을 때면 여기저기를 콕콕 찔렀다.



세상에는 나만큼 자기 감정을 낯설어하지는 않는 사람이 아주 많을 것이다. 그 다름이 싫어서, 예전에는 나의 이런 부분을 글로 적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솔직하게 썼다고 생각한 일기조차도 이 징그럽게 복잡한 자기불신의 구조를 꿰뚫어보진 못했던 것 같다. 이제 적어 본다. 나는 내가 근본적으로 어딘가 이상하다는 불안감을 늘 갖고 있었고, 내 불완전함을 감추는 데 몰두하다 보니 내가 실제로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능력이 매우 부족했다. 이 여행에 대한 나의 감정도 바로 이 덫에 걸린 상태였다.



그러다 문득, 몇 주가 지났을 무렵에야, 내 마음 속 어떤 목소리가 반박한다. <비행기에서 운 건 이제 지난 일 아닌가? 그 때의 기억 말고 지금의 너를 봐. 별로 마음에 안 든 도시에 대해 언젠가 비 오는 날 다시 그 도시를 걷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딨어.>

사실이었다. 도노스티아 축제 노래 에코백을 만든 디자이너 브랜드인 룸278(Room278)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짧은 동영상이 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 사람들이 몸을 움츠리고 오래된 문을 통해 해안 방향으로 나가는 모습이다. 가끔 그 동영상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산 세바스티안, 축축하고 춥고 어두운 오후를 뚫고 마시는 커피 맛이 궁금했다. 여름 피서객들이 사라지고, 더 거센 파도를 반기는 서퍼들만 남은 수리올라 해변이 궁금했다. 거기에 있었을 때는 태양신을 숭배하듯 햇살을 사랑했는데, 돌아와 보니 이제는 내가 보지 못한 도시의 모습들을 그려보고 있었다.



나의 자기혐오적이고 비관적인 면이 마지막 공격을 시도한다. <하지만 넌 추운 거 싫어하잖아. 몸이 약하고 잘 지치는 성미라 막상 비 오는 날 거기에 가면 아무 것도 안 하려 들걸.>

그러나 마음 속의 목소리는 지지 않는다. <힘들어 보이는 걸 좋아하는 게 뭐 어때서 그래. 심지어 이건 상상일 뿐이니 진짜 힘든 것도 아닌데. 뭔갈 좋아한다는 건 원래 그런 거야. 환상과 논리적 비약의 도움 없이 뭔가에 빠져들 수 있다고 생각해? 넌 늘 그래. 감정을 논리로 재단하지 못해 안달이야. 하지만 그런 식으로 <완벽한 근거>가 있다고 판단한 감정만 정당화하다간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야. 날 그만 의심해. 난 거기서 있었던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모두 기억해. 뭘 잊어버리거나 왜곡한 게 아니라고. 난 그냥 거기에서 있었던 좋은 일들이 나쁜 일들을 덮고도 남을 만하다고 느껴. 그게 다야.>

그랬구나, 마침내 나의 나머지 부분들이 깨닫는다. 난 이번 여행이 진짜로 좋았고, 산세바스티안이 맘에 들었구나. 그리고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구나.



그러고 보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여행지에서 산 에코백과 신발을 애지중지하고, 기회만 되면 여행지 얘기를 하고 싶어하고, 여행지 사진을 인화해 사무실 벽에 붙여 놓은 사람이 그 장소에 대한 자기의 마음을 의심한다니. 하지만 저 내적 대화를 하기 전까지는 그런 명백한 행동의 의미조차도 깨닫지 못했다. 내 마음이 갇혀 있는 의심과 불안의 껍질이 그만큼 견고했다.

글로 적으며 꽤 요약했는데도 긴 과정이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깨닫는 게 이렇게 복잡하다니? 고작 여행지인데? 그러나 나의 그런 <다름>에 진저리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타인이 공감할 수 있건 없건, 저 결론을 내린 후 나는 코끝이 조금 찡해질 만큼 속이 시원했다. 평생 마음을 감싸 온 불안과 자기혐오의 안개를 걷어내고, 나에 대한 사실 하나를 찾아낸 게 뿌듯했다.

완벽하지 않은 내가, 완벽하지 않은 도시에서, 완벽하지 않은 경험을 한 어떤 도시를 나름대로 좋아하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좋아하는 곳이니까 어쩌면 언젠가 다시 갈지도 모르겠다. 하루종일 시민들이 드럼을 두드리며 즐긴다는 성 세바스티아누스 축일에 맞춰서, 아니면 재즈 페스티벌 기간에, 아니면 그냥... 어쩌다, 살다 보니, 뭐 그렇게. 성 세바스티아누스 축일은 1월 20일이다. 그 때의 산세바는 정말 춥고 흐리고 시끄러울까? 그러면 난 후회할까? 후회의 심상이 그려지는 순간 내 마음 속에서 축일의 멋진 이미지는 모두 잊혀지고, 후회에 대한 거대한 두려움이 고개를 슬쩍 든다. 후회에 대한 두려움에 집착하면 그만큼 후회하지 않을 가능성은 관심 밖으로 이탈해 과소평가되고, 이는 결국 부정적인 미래를(실현 확률과 상관없이) 자기도 모르게 기정사실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내가 상상하는 미래가 늘 실제보다 어두웠다는 걸, 이제 눈치챘다. 이제는 그런 흐름에 휘말려 자신을 미워하고 에너지를 잃지 않고 싶다. 이제는 정신이 흐르는 방향을 바꾸고 싶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8월의 어느 퇴근길.

너무 일찍 휴가를 다녀온 죄로, 나는 35도를 가볍게 넘나드는 한국의 무더위 한복판에 빠져나갈 구멍 하나 없이 갇혀 있다. 산세바스티안 날씨를 검색해 본다. 수은주가 30도 후반대를 찍었다는 마드리드와 달리, 이 동네는 지금도 내가 갔을 때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산세바스티안이라는 글자를 보니 금세 머릿속에 수리올라 해변의 이미지가 펼쳐진다. 먹기 좋은 토스트의 온도로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 이제는 나름 눈에 익은 울리아 산. 이럴 줄 알았으면 8월에 갔을지도 몰라. 그 때가 그립군.

그리워할 곳의 발견이야말로 여행의 가장 큰 의의일지 모른다. 정말 그런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중요한 건 내가 또 수리올라 타령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런 내가 별로 의심스럽거나 싫지 않다. 산세바가 생각난 김에 바스크 사람들이 좋아하는 치즈케이크를 먹고 싶어졌을 뿐이다. 라 파브리카에서 눈물을 머금고 물렸던 커피와 반만 먹은 치즈케이크를 기리며, 역 근처의 케이크 잘 하는 카페에서 똑같은 조합으로 먹어야겠다. 멀리 가지 않아도, 도망치지 않아도, 오늘은 그 정도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마침내, 나의 스페인 여행기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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